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그리스 (문단 편집) == 사회 == 고대 그리스 사회는 크게 시민권을 가진 시민들과 그렇지 못한 노예들로 나뉘어졌다. 오직 '토지를 가져서 세금을 낼 재력이 충분하고 군대 복무를 성실히 마친 성인 남성'이라는 꽤나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만 도시의 정식 시민 자격을 획득한 걸로 여겨졌고, 그렇지 못한 경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외국인이나 여성, 노예들은 시민 대접을 못 받고 살았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급이 나눠졌다. 고대 아테네의 경우 부를 척도로 크게 사회를 펜타코시오메딤노이[* 최고자산계급이자 사실상 아테네를 좌지우지하는 유력 가문들.], 300메딤노스 이상은 힙파다텔루테스[* 기병 복무 가능자.], 200메딤노스 이상의 제우기타이[* 중장보병 복무 가능자], 그리고 200메딤노스 이하 최하류층인 테테스 이렇게 나눴다. 하지만 이 계급이 고정되어있던 건 아니라서 재산만 모은다면 얼마든지 계급 이동이 가능했다.[* 그리고 계급이 나뉘어 있다지만 민주주의를 시행한 후에는 계급간의 격차가 어느정도 이루어진다. 정치적으로는 테티스 1명과 펜타코시오메딤노이 1명 모두 동등한 표가 주어지고 당연히 테티스들의 숫자가 더 많기에 자연스레 테티스들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다만 시민들 사이의 절대적 평등을 중시하던 [[스파르타]]는 후술한 내용을 보듯이 극단적인 노예제로 악명 높았지만 일부러 모든 시민들을 '동료'라는 뜻의 호모이오이라고 부르면서 계급을 나누지 않았다. 노예들은 대략 고대 그리스 사회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했다. 기원전 600년 무렵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 도시들에 [[노예제]]가 도입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정식 시민 가정이라면 노예 한둘 쯤은 데리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주인의 자비를 빌어 노예들도 개인 재산을 가지는 건 허락되었지만 정치권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주로 가사도우미나 가정교사, 힘든 일을 할 심부름꾼들로 많이 썼고, 전성기 시절에는 가난한 시민 가정에도 노예들을 부리곤 했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의 경우 노예의 비율이 최소 40%에서 최대 80%에까지 이르렀는데, 이들은 워낙 인종이 다양하고 출신지가 달라서 결속력이 약해 함부로 반란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기에 아테네인 주인들은 노예가 일을 잘하면 미래에 풀어줄 것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노예들의 불만을 잠재웠다고 한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는 로마와 달리 해방된 노예가 시민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해방노예들은 '도시에 살고 있는 외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이 노예제가 극단에 달했던 게 바로 [[스파르타]]다. 당시 스파르타는 크게 3계급으로 나뉘었다. 1계급의 시민권자 스파르티아타이(Spartiates), 2계급의 주변인과 항복한 자들인 페리오이코이(Perioeci), 3계급 노예 헤일로타이(Helots)였다. 위에서 말한 그 의무교육을 받고 진짜 사람으로 대접받았던 건 오직 1계급 스파르티아타이만 가능했다. 2계급 페리오이코이의 경우 상업 등에 종사했고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는 있었다만 참정권은 없었다. 정말 최악이었던 건 밑바닥 헤일로타이들이었다. 이들은 예전에 스파르타에 복속되어 정복당한 폴리스 메세니아와 라코니아의 시민들이었는데, 이들은 '''사람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이들에겐 개가죽으로 생긴 우습게 생긴 모자를 씌웠고 심심하면 쳐들어가 죽여버리는 경우가 흔했다. 뿐만 아니라 농사짓는 노예였기에 하루 종일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목이 날라갔다. 심지어 스파르타 소년이 성인으로 인정받는 과업들 중 하나가 '''헤일로타이 1명의 목을 잘라오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스파르타 시민들이 헤일로타이를 무시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